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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writer's block :: 2010/07/19 07:03

머릿 속에 멋대로 떠다니는 문장들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끄집어내어 묶어놓는 것은 극도로 짜릿하면서도 극도로 피곤한 일이다. 가끔은 글자들을 조각조각 분질러놓고 싶을 만큼. 끊어질 듯 말 듯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면 두통을 느낀다.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컴퓨터도 핸드폰도 꺼 놓고 맑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곧 인스탄트 카페인성 의욕과 질깃한 피로가 멋대로 섞여 어질하다.

타인과 집단과 대상을 규정하고 규명하고 판단하는 일의 연속인 사회과학은 흙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고는 새파란 이상의 이응자도 꺼낼 수 없는 잔인한 것이다. 타인의 이상을 평가해야 하고, 타인의 선택과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비판하거나, 규명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나 차이점보다는 집단으로서의 공통분모를 찾는 데에 집중하게 되고,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좋고 나쁘며 옳고 그른 틀로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써 놓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괜히 착한 친구에게 가당치도 않은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붓고 온 것 마냥 소화가 되지 않는다. 나는 이 글로 누구의 이상을 공격하고 있는가, 나는 이 글로 누구의 행위를 비난하고 있는가. 나는 이 단어로 누구의 인생을 멋대로 규정하고 있는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

사실 아름답게 굴러가는 언어에 집중하는 글쓰기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불쾌하게 하지 않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마치 잔칫요리처럼, 고추를 좀 더 넣으면 매콤하다며 좋아할 사람이 다섯 생기면 맵다고 펄쩍 뛸 사람이 여섯 생기게 마련이고, 간장을 더 넣으면 열 명은 짜네, 덜 넣으면 다른 열 명이 싱겁네, 이 요리는 차게 먹어야 제맛이네, 아무리 그래도 갓 김이 모락모락 난게 최고 아닌가, 하면서. 수십명이 있으면 수십명의 입맛이 있고, 한 주제에도 수천명의 연구자나 이해관계자가 있으면 수천개의 의견이 있다. 남의 글을 헤집고 오리고 토달고 지지고 볶는 글들이 팔할을 차지하는 건 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이 성격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괜히 다들 열심히 살아서 그렇다. 사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매력있는 거다.

어쨌든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겠다거나 뭔가 잘 써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질러(?) 놓고 봐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다. It's time I realized that if I consider myself a social scientist and still do not write things down, then my ideas are simply irrelev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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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on | 2010/08/02 09: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랜만에 너의 글을 읽는데 갑자기 '가지않은 길'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회사가 나에게 가르쳐준, 빈드시 가치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종종(아니 자주) 진절머리 나지만 중요한 배움거리들 목록에 들어가는 것 중에 하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의 글을 읽는 것' 혹은 '긴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거나 싫어한다는 거다. (내용에 상관없이 말이지.) 요점만 MECE하게 표에 넣어서. 자꾸 그런 식의 표현 방식에 익숙해져가는 나를 보는게 참, 싫다기 보단, 재밌네. 말을 자꾸 덧붙여 주절거리는 말&글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난 지금도 주절거리고 있지!!)

    남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글을 치열하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대상으로, 혹은 재료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라면 사회의 모든 이들이 머리로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반응할 수 있는 심플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특히 우리학교 사회과학도들이 매우 취약한 부분이지..ㅋㅋ

    요점은? 보고싶다는 거지! 우리 예진이는 잘 살고 있는지. 보고싶다!!

    • | 2010/08/15 07:01 | PERMALINK | EDIT/DEL

      가지않은 길이라기보다...우리는 세계정복종합계획을 위해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는 거야! 소프트파워가 어쩌니 해도 역시 에너지(read 석유)가 있어야 비로소 세계정복이 가능한거라구! 넌 잘하고 있어!
      ...는 오랫만에 생각나서 해 본 소리고(ㅋㅋ), 정말 맞아 네 말. 전문적으로 일 하는 회사만큼 엄격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공부하는 학교 치고는 상당히 professional-bent 되어 있어서 bulletpoints, 1-minute pt intro, flowchart 이런 것들 배우는데 그게 그냥 줄줄 늘어놓는 글보다 사실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매번 느껴. 심지어는 줄줄 쓰는 글은 순전히 표현(혹은, 혹자의 표현을 비자면 '배설')을 위한 것이란 생각까지 들기도 해. 환영받지 못한다-는 네 느낌처럼.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줄글형 반실증주의적 인간인지라, 모 교수님 말마따나 아름다운 사회과학 글이라는 것도 있다고 믿고 요점정리 도무지 안되는 기나긴 논문 (웬트나 아렌트 같은) 읽다가 감동먹기도 하지만 말야. 사실 문제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내는 능력이 부족한 사회과학도들이 그 와중에 소통의 문제니 민주주의니 사회의식을 논하는 것 만큼 모순도 없다는 거지 하하.

      나도 요점은 보고싶다는!! 진짜 할 얘기가 산더미같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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