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the world, beautiful and broken :: 2010/03/26 12:32
공부도 일도 여러가지로 눈과 귀를 열어 놓아야 하는 상황이어서인지, 요즘은 세계 방방곡곡의 지독한 이야기들을 듣고 배우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낸다. 잊지 말아달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처참한 사진들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그러나 담담하게 쓰여진 고통의 경험들과, 살아남는 혹은 죽어가는 때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매끈한 개념과 틀만 가지고 있던 머릿속에 투박한 인간의 얼굴을 새겨넣는 과정이다. 글을 읽으면서도 보고서를 쓰면서도 자료조사를 하면서도 영상을 보면서도 강연회에 참가해서도 수업시간에 토론을 하면서도 심지어는 요리를 할 때라거나 자려고 누운 시간에도 꿈속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줄글처럼 머릿속을 흐른다. 가끔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 피로함을 느끼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구겨넣어 버리다가도, 고작 간접 경험일 뿐인데라는 생각에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곤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보고있던 신문에 끄적여놓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고민하며 뱉어보기도 하지만 넘쳐흐르는 이야기들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충분히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알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읽기만 하며 쓰지 않는것은 직무유기이자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게으름이라는 자책에 끊임없이 시달리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머릿속의 끊임없는 소리들을 더하고 덜고 굴리며 일하고 수업듣고 숙제하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 가슴에 머리속에 끓는 것들에 대한 글을 쓸 기운이 좀처럼 남지 않는다. 멍하게 있고 싶어 늦은 저녁 무렵에는 부질없이 스탠딩 코미디나 만화, 토크쇼 채널들을 돌리거나 단순하고 강한 비트의 팝 음악을 걸어놓는다. 단지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용기와 심지어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불평이 치민다. 그럴수록 이 망가진 세상에 대한 용기는 배워서 얻은 생각과 논리와 잘 관리된 계획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배우고 이해하고 계획하고 대처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실은, 마음 깊은 곳의 따듯함과 옳은 것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이들의 가장 본능적인 반응이야말로 이 세상의 아름다운 유일한 것이지 싶다.



